미리벌의 발자취
연혁
- 경남의 동북부에 위치한 밀양시는 일찍부터 교통이 발달하여 부산, 대구, 마산, 울산 등 인근 도시와 교육이 활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들 도시들과 문화 교류가 활발히 전개되어 옛부터 문화의 본고장으로 발돋움하였다.
밀양은 B.C 3세기경에 부족 사회가 형성되었으며, 각 부족마다 족장이나 추장들이 중심이 된 부족사회였으나, A.C 3세기경 부족 사회의 연합들이 모여 몇 개의 읍락국가로 발전되었고, 3세기(삼한시대) 후반에는 읍락국가들의 연합에 의한 소국으로 발전 변진 24국 중의 하나인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이 되었다.
미리미동국이 언제 가야에 병합되었으며, 다시 신라의 영토가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의 행정구역으로 추화군이란 이름이 주어진 것은 지증왕 년(505년)이며, 경덕왕 16년(757년)에는 추화군을 밀성군(密城郡)으로 승격하면서 양산군, 창녕군 영산면, 경북 청도군 일부 지역을 밀성군(密城郡)에 예속시켰다.
고려 성종 2년(983년)에 밀성군을 다시 밀주로 승격하고, 창녕군과 청도군, 현풍, ?각을 밀주의 관하에 두었으며, 고려 성종 14년(995년)에는 밀주군, 고려공양왕 2년(1390년)에는 밀성부(密城府)로 승격되었으며, 조선 태조 3년(1394년)에는 밀양부로 승격되었다. 조선 태종 15년(1415년)에는 당시 경주도의 유일한 밀양도호부로 승격되는 등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고종 32년(1895년 5월)에 칙령 제98호에 의거, 대구부 밀양군에 편입되어 산하 12개면을 관장하였고, 그 이듬해인 1895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의하여 경상남도 밀양군이 되었다.
한편, 구 밀양시(읍)의 연혁으로는 1895년(고종 32년) 밀양군 부내면, 1910년 10월 밀양군 밀양면, 1931년 4월, 부령 제103호에 의하여 지금의 대전광역시와 함께 밀양읍이 되었고, 읍 승격 이후 58년만인 1989년 1월 1일 법률 제4050호에 의해 밀양시로 승격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자로 도.농 통합형의 새로운 밀양시로 출범하였다.
- 미리밑동(1997, 밀양향토청년회 발행)에서 발췌
- 삼국지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의 기록에 따르면, AD 3세기 경에는 변한(弁韓) 12소국(小國) 중의 하나인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미리미동국은 그 후 독자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사노국(斯盧國 ; 경주)을 중심축으로 하여 보다 강력한 국가 체제를 구축하고, 활발한 대외팽창정책을 추진하고 있던 신라의 세력권에 편입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나아가 우경(牛耕)의 실시와 순장(殉葬)제의 폐지에 따라 비약적인 농업생산력의 발전을 보게 되는 6세기초 신라 지증왕(智證王)대의 주군제(州郡制)의 시행과 더불어 추화군(推火郡)으로 개칭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하여 통일신라 시대에는 경덕왕 16년(767)의 지방 제도 정비와 더불어 밀성군(密城郡)으로 개칭되었으며,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성종 14년(995)에 전국을 4도호부(都護府) 10도(道)로 구분하는 군현제(郡縣制) 개혁을 단행하였는데, 이때 종전의 밀성군을 밀주(密州)로 승격시키고 군수(郡守) 또한 자사(刺史)로 개칭하였다. 충렬왕 2년(1276) 고려 정부는 이 지방의 군민 방포, 계년 등의 주도하에 고을 사람들이 당시 대몽항쟁을 이끌었던 삼별초군에 호응하였다는 이유로 밀양 전체를 반역향으로 귀화부곡(歸化部曲)으로 만들어 계림부(경주)에 예속하게 하였다. 그 얼마 뒤에 밀성현(密城縣)으로, 다시 밀양군(密陽郡)으로 승격시켰다.
이 밀양부는 조선 왕조의 건국 후에 읍호의 승강(乘降)을 그듭하다가 태종 15년(1415)에 이르러 비로소 고을 주민의 호수가 천호(千戶) 이상으로 불어나 이때 정식으로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가 되어 거읍(巨邑)으로 정착되었던 것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현재의 밀양시 일원에 해당하는 부내면(府內面)은 당시 서문내리, 남문내리, 동문내리, 노상리, 노하리, 송정리, 교동리, 춘복리, 전천리, 용성리, 평리, 남포리, 가곡리 등의 13개리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이 부내면은 고종 32년(1895)에 칙령 제98호로 23부제를 실시함과 더불어 종전의 밀양도호부를 대구부 밀양군으로 개편하게 되자 밀양군 부내면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가 1896년(고종 건양 원년)에 도제(道制)로 되돌아가서 13도제를 시행함에 따라 이 밀양군 부내면은 종전의 대구부 소속에서 경상남도의 관할로 개편되었다. 당시 밀양군 부내면의 행정 구역은 단장면과 부내면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여 활성리, 용평리, 가곡리, 남포리, 삼문리, 내일동, 내이동, 교동리의 8개 동리로 개편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이 이전까지는 9개 리(里)였다. 개편 당시 면소재지는 내일동이었으며, 기왕의 활룡리, 남부리, 동부리, 서부리, 노상리, 노하리 등의 명칭은 행정 구역 개편과 더불어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밀양부 부내면은 몇 년 뒤인 1918년에 밀양군 밀양면으로 명칭 변경을 보게 되었다. 그 후 1931년 4월 1일 밀양면이 밀양읍으로 승격되게 되었고, 나아가 1988년 6월 22일 밀양군 조례 제 1047호로 내일, 내이, 교, 삼문, 가곡동을 리로 명칭 변경하였으며, 1989년 1월 1일 법률 제 4050호로 대망의 밀양시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밀양지리고(1994, 밀양문화원 발행)에서 발췌